소개 가이드

운남 역사 소개

운남성은 인류 발원지중의 하나로, 지금으로부터 약 170만년전의 원모 원인은 중국 국내 발견된 최초 원인입니다.  

 

장유입진: 기원전 3세기, 촉나라 장군 장유는 병사들을 이끌고 운남성 로침 및 베막 등 지역에서 운남지역을 통일하고 “진국”을 세웠습니다.

 

진개 오치도: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 운남성에 군현 제도를 실시하면서 “오치도”를 개설하였습니다. 오치도의 개척은 운남성 동부와 외부의 연계가 개시되었습니다. 

   

한무개진: 서한원봉2년(기원전109년), 한무제는 곽창을 파견하여 운남성에 주둔하여 익주군을 설립하고 군부를 진지현(현재 진녕현)에 설립하고 “운남”은 그중의 하나의 현으로 현성은 현재 상운현의 “운남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나라 왕조는 인력들을 파견하여 박남고도를 개발하도록 하였으며 상업이 날따라 활발하게 되었으며 서남지역과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각국간의 경제, 문화교류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제갈량 남중 통치: 삼국시기에 운남, 귀주성 서부 및 사천 서남부의 일부 지역은 “남중”으로 불리웠습니다. 기원 225년, 촉나라 제상 제갈량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운남에서 맹획을 7번 잡고 다시 풀어주었으며 빠른 시간내에 남중을 평정시키고 운남을 촉/한의 일부분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범씨 운남 거주: 동진 초년에 내륙지방으로부터 운남으로 자리를 옮긴 범씨 세력이 점차 커지게 되었으며 범천은 왕으로 자칭하고 진지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범씨가 운남을 통치한 400여년간에 사회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경제/문화가 상대적으로 발전되었으며 유명한 <범용연비> 및 <범보자비> 등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남소국: 기원 738년, 당나라 왕조는 얼해지역의 “몽사소”를 협조하여 “얼해육소”를 통일하였으며 “남소국”을 설립하였는데 피라각은 “운남왕”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남소국은 13세대로, 200여년간 통치하였으며 곽동성(현재 곤명)이 설립되었습니다.

 

대리국: 937년, 단사평은 남소건 대리국을 멸망시키고 대리를 도읍으로 지정하였다. 대리국은 22세까지 전해졌으며 316년 지속되었습니다. 통치기간에 선찬성(현재 곤명)은 점차 운남성 최대 도시로 되었습니다.

 

원나라: 1253년, 후필열은 군대를 거느리고 금사강을 통하여 운남으로 진입하여 대리국을 멸망시켰다. 1274년에 운남은 성을 설립하고 싸이전츠•전사정은 후필열을 “운남 행성 평장정사”로 임명하였다. 운남 행성이 수립되면서 운남성은 원나라에 소속되어 운남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명나라 및 청나라: 1381년, 주원장은 박우덕, 목영평을 파견하여 운남을 평정하도록 하였으며 곤명을 점령하고 원나라 양왕을 멸망시켰다. 명나라 말기에 이정국을 대표로 하는 대서군은 황제 영력제(주유랑)를 모시고 곤명을 근거지로 삼고 청나라 군대를 격파시켰다. 1659년, “평서왕”오삼계는 운남에 진공하여 영력황제는 미얀마로 도망갔다. 1662년, 에영력황제는 오삼계로부터 금전사(현재 곤명 “피사파")에서 사형을 당하고 명나라가 멸망되었다. 청나라 강희시기에 “삼판걸구”중의 하나로, 오삼계의 난이 파쇄되었다.

 

근현대

아편전쟁(1840)이후, 운남은 제국주의 위협과 침략을 받았으며 각 민족 인민들은 용감하게 반항길에 나섰다. 1911년 10월 30일(음력 9월9일)에 채악은 대중들을 인솔하고 “중구봉기”를 일으켰다. 11월 1일, “운남군 도독부”는 곤명에서 설립되었으며 채악은 도독으로 선거되면서 청나라는 운남지역에서 250여년간 통치시기가 종료되었습니다.

 

1915년 12월 25일, 채악, 당계소 등은 호국운동을 일으켰으며 국내 원세계를 토벌하는 혁명의 불씨를 심게 되었다. 1937년, 항일전쟁이 전반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운남은 최선을 다 하여 항일전쟁에 투입되었으며 20만 운남군대는 대아장 등 전선으로 파견되었으며 10여만명 민공들이 운남/미얀마 도로를 건설하였다. 1942-1945년에 운남은 중국 원정군의 미얀마 지역의 항일전쟁을 지원하면서 운남 서부지역에서 원정군과 같이 서남지역의 문호를 수호하였으며 끝내 국토를 수호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12월 1일, 국민당 반동파 통치를 반대하기 위하여 곤명에는 “12.1”학생운동을 일으켰다. 1949년 12월 9일, 국민당 운남성 주석 노한은 봉기를 일으키면서 운남이 평화적으로 해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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