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가이드

사계 고진: 한 차말문화를 응집하는 역사책

 2001년10월11일, 세계기념적인 건축유산 재단(WMF)는 미국 뉴욕에서 “중국 젠촨 사계 사등가(구역)이 2002년 제101개의 세계소멸위기건물 보호목록에 당선된다”는 것을 밝힌다. 그 재단은 “사계 사등가(구역)은 차마고도에 유일하게 남는 옛날 거래시장이고 완정한 연극 무대와 여관, 절, 대문을 보존해서 그때에 서장과 동남아시아를 이어지는 옛날 거래시장이 상당히 완성하게 본존된다.”라고 밝힌다.

그때부터 이 세월에서 잊어지는 윈난 서부의 변두리 마을은 해외에서 이름을 날린다. 해외 관광객이 그 이름을 흠모하여 찾아와 이 차말문화을 응집하는 역사책을 읽는다.

젠촨현 사계고진에 오며 앞의 경치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시간이 거슬러 옛날 차마고도에 돌아간 것 같다. 수백년의 시간을 겪어있는 사계진의 돌판길에 걸어다면 오래된 마방 역참이 잇달아온다. 그 벽돌, 그 기와, 그 나무, 그 돌, 말안장, 등자, 말채찍, 말방울, 간데라, 부뚜막과 삭탁, 심지어 남포등과 부뚜막게 꺼멓게 그은 벽까지 그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된다.

외지어서 잊어지고 가난해서 파괴를 당하지 못한다.

생생도 못해 외짐과 가난은 고진의 행운이 된다. 차말문화의 행운덕분에 유일하게 완정히 보존되고 차마요지가 된다. 그리고 젠촨 사람들이 차물문화를 떠나지 않고 그립고 정성껏 보호하기 때문이다. 2005년 사계고진은 유네스코가 수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문화 유산을 보호하는 걸출 고로상”을 받은다.

과도 개발하는 바람에 고성의 거리가 씨끄러운 상업가가 되어 고풍이 사라지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사계의 고요한 분위기를 아주 좋아한다. 돌판길에 걸거나 옛 극장 아래에 서거나 흥교사 대전안에 있거나 조용해서 자기의 마음 소리도 들 수도 있다.

“특별한 가이드”께서 우리에게 안내해서 정말 영광스럽다. 그분은 바로 백족 문화학자, 남조와 다리국의 역사문화와 중교예술을 연구하는 전무가 동증욱 씨이다. 그분은 많은 전문저서를 출판하시고 많은 학술논문을 발표하시고 국제 학술 세니마를 8번에 참석하시고 “윈난 국학 대강당”에서 여러번 학술 주제 연설을 하신다. 그분의 풍부한 지식과 생생하는 해설을 통해 기자들이 크게 시야를 넓혀서 그분을 “동박사”로 부른다.

왜 차마고도는 사계고진을 선택한가? 왜 사계고진이 그렇게 반영한가?

동증욱께서 우선 사계고진의 독특한 지리위치로 결정한다고 말씀하신다. 사계고진은 흑혜강 서안의 오봉산의 북쪽에 있어 고진의 중심인 사등가는 “오봉”이 있는 완만한 곳에 있는다. 그곳은 사계의 최고 위치이고 산을 의지하고 물에 가까이 하고 웅장해서 사계고진 차말문화의 핵심과 영혼이다. 그래서 사계는 “전장차마고도”의 중요 거래시장과 교통요지가 된다. 여기서 북부로 가면 중국 강장 지역에 이르고 이도에 도달할 수 있며; 남부로 가면 대리와 추슝을 지니고 “오자도(五尺道)”을 접하고 중원 지역에 이를 수 있며; 서부에 가면 “박란고도” 및 “영창도”와 접하고 동남아시아, 남아시아와 서아시아의 각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현재의 사등가는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 때 “남단”이라고 하여 남쪽의 불단의 뜻이다. 당나라 이전 때 여기에 사원이 있다. 명나라 영락 13년 사원이 확장되고 흥교사로 명칭을 바뀐다. 그때부터 “남단”의 지명이 “사등”으로 바뀐다.

“사등”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사”는 “흥교사”를 가리키고 “등”은 백족어 “곳”의 뜻이다. “등사”는 바로 “흥교사가 위치하는 곳이다”라고 뜻이다. 백족 사람이 “재래 시강”을 “거리”로 불러서 흥교사를 중심으로 차마고도의 거래 시장이 형성한 후 사등가를 불러 “사원이 위치하는 곳의 거리다”라고 뜻이다.

사계 고진이 차마고도의 시작점도 아니고 종착점도 아닌데 왜 이렇게 뛰어나고 차마고도에 있는 제일 큰 규모와 제일 높은 가치가 있는 도시가 된가?

지리위치와 물질적 준비을 보면 이 곳은 “귀관”의 출입구이고 설상고원에 가는 마바리와 여상에게 마지막의 음식물 공급소와 휴양소이다. 여기에서 떠나가 차마고도를 건다. “산에 방울이 울려서 마바리가 온다.”라는 말은 서정시가 아니라 비장곡이다. “우두머리”가 마바리를 데려 높은 산과 협곡을 지나가고 물살이 급하는 강을 건너고 소택지와 원시림에 대한 겁과 싸우고 목숨을 걸리고 살림을 도모한다.

차마고도 옆에 얼마나 마바리의 해골을 묻는가? 마바리가 강건한 몸뿐만 아니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모험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마음과 정신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것이 필요한다. 사등가의 흥교사와 오래된 극대는 신성한 천국과 번화한 세상을 연결하는 최고의 선택이다.

“천하의 선산에 부처가 많다.” 불교사원 대부분이 경치가 아름다운 명산에 위치하는데 왜 사계고진에 큰 규모가 가진 사원이 있는가? 답안은 바로 정신의 필수이다. 사원의 부처께서 고진의 백성과 차마고도에 걷는 마바리와 여상을 지키며, 마바리와 여상들이 부처께 향부를 바치고 정성스럽게 절을 드리고 부처의 지키기를 기원한다. 가는 길이 평안하기 기원한다. ...생사의 시련을 겪고 설산을 넘어가고 물살 세는 강을 건너고 협곡을 지나고 사계에 돌아오는 마바리와 여상에게 사등가는 “지상의 천국”이어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삶을 누리고 다시 “귀관”을 도전할 계획이다.

“차말호시”는 당나라 때 시작하고 송나라 때 창성하다. 이른바 “차말호시”는 물물교환을 가리킨다. 마바리로 나르는 방식으로 캉짱지역의 특산물 마필, 털가죽, 사향, 사프란, 패모, 동충하초와 윈난, 쓰촨의 찻잎, 소금, 포백, 사탕 등 생필품을 교환한다. <태평환우기>에서 “이역에 오랑캐가 혼잡하고 거래 시장도 없다. 한족 사람이 그들과 거래할 때 화폐를 사용하지 않은다. 한족 사람은 비단, 차, 베로 이역의 향료와 말을 교환한다.”리고 기재한다. 티베트인은 찻잎에 대한 수요가 제일 많기 때문에 “차로 말을 교환함”의 거래 액수가 제일 크다.

동증욱 씨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차마고도 및 차말문화는 비범한 가치가 있어 언제나 읽어도 새로운 내용을 느끼는 역사책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 우리가 차마고도에 대한 인식이 경제무역통로만에 제한되는에 국가 정치와 문화, 민족 단결 및 국가통일에 대한 독특한 역할을 소홀한다.

사계고진은 차마고도에 있는 요지로서 중심지 사등가에서 주변 사방가 등 각 거리로 마바리 객주집이 많이 분포한다. 이 마바리 객주집의 특정은 대부분이 앞에 침실이고 뒤에 마당이어서 거래를 할 수 있고 숙박도 할 수 있다. 마바리 객주집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며, 고급것도 있고 저급 것도 있다. 동증욱 씨는 기자들을 데려 가는 큰 저택은 사등가의 “특급”마바리 객주집 구양저택으로 부른다.

구양족보의 기재에 따라 조상 구양자군은 강서로롱군에 출신하고 명나랄의 관료이다. 몇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사계의 명문 귀족이 된다. 청나라 말기에 마비리 패의 우두머리 출신의 구양경은 사계파의 갑무가 돼 이 제일 멋진 구양저택을 건축한다.

구양저택은 사등가 민가건물 중에 혼자서 일가를 이룬다. 그가 단일의 백족 전통 “삼방일조”의 건축형식을 돌파하고 전통을 기초로 기교있게 민가와 마바리 객주집의 이중기능을 충분히 발위한다. 그 저택은 치밀한 삼 개의 “삼방일조”를 이어서 전체 건축구상이 절묘하고 분리한 부분도 있고 모인 부분도 있어 상당히 웅장하다. 남쪽의 저택은 사람이 자는 곳이고 중간 부분은 마바리와 여상이 숙박하는 “고급 객실”이고 북쪽은 마구간이다. 전체저택은 “경독(耕读)”의 문화 분위기가 짙다. 조각, 채색도안, 장식, 배치 등 각부분은 백족 고건물의 뛰어난 기예를 구현한다. 구양 저택은 차마고도 역사가 고진에게 남겨 주는 귀한 문확유산이다.

구양저택의 정문은 사계의 독특한 홍사돌로 조각한 것이고 문둔테와 문겉이 정세하게 조각해 변화점이 곳곳에 서 볼 수 있어 뜸직하고 웅장한다. 문 양쪽에 지는 시문은 주인의 추구와 이상을 표명한다. 오른쪽에 “내 마음이 어디에 향하는 것을 물으면 삼분은 주공과 공자에 이분은 장자에 향한다. 여객께서 자주 물기 필요 없고 독서소리에서 제 마음을 표명한다.” 구양 주인이 한족 문화를 추구하고 숭상하는 사상을 표현한다. 

정문으로 들어가 후미진 골목을 통과하고 든든하고 높은 문병이 앞에 우뚝솟어 고개를 들어 바라봐야 문병의 위쪽을 볼 수 있다. 문병에 “농사 지는 것 사업이다(务农为业)”와 “독서 생애(读书生涯)” 등 인물산수화를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고 정원을 청소한다”를 내용으로의  <주자가훈>를 쓴다. 문병 중간부분은 “육일가성”사자가 저택 주인이 구양수와의 사계사이를 표명한다. 구양수 호는 취옹이고 만년에 스스로 “육일거사”를 호로 부른다.

정원에 있어 궁전안과 같다. 주인이 일상기거의 장소는 가운데 방에 “백복백수(百福百寿)”를 조각하는 목조격자문 여섯개가 있어 조각과 그림을 있고 웅장하고 아주 넓다.

고진이 번화하고 토비가 날뛰는 년대에 독창성을 갖추는 구양저택은 힘들게 산길을 걷는 마바리와 여상에게 편한 거주지를

테마공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