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가이드

신명의 주소 --송찬임사

샹그리라현성에서 북으로 향하는 넓은 초원이 있습니다. 탐욕스럽게 녹색의 대지를 향수하면서, 희고 우뚜곳아있는 사원은 초원의 끝인 뭇산위에 솟아있습니다. 푸르른 하늘아래, 둥둥 떠있는 구름, 뭇산들사이에 우뚝 솟하있는 성결하고 장중한 맛을 드러내고 있는 사원, 옥정위에 도금한 동기와가 번쩍번쩍 빛을 뿌리고 있으며-- 처음 보게된 송찬임사는 “놀라운 매력”으로 형용할 수 있습니다. 전에 송찬임사에 대하여 별로 요해하지 못하였지만, 이에 대하여 알게된후에야 운남지역에서 제일큰 장전불고사묘라는것을 알게되었고, “소형 포탈라궁”으로 불리고 있다는것도 알게 되었으며, 마음속으로 “실례”의 느낌을 지니게 되어 불안함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송찬임사는 독특한 배치를 지니고 잇습니다. 사묘의 부지면적은 500묘로서 타원형의 성벽을 이루었습니다. 창임, 길강량 대전이 중앙에 우뚝 솟아있고, 주최아래 의 팔대 감심과 “서소”, “각하”둘러쌓여, 높고 낮은것이 엇갈려 있어, 입체윤곽이 분명하고, 주체건물의 높고 웅위로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낮은 승려들의 숙고, 창고 등 소형 건물과 높은 휘황한 대사주체건물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어, 높은 조화로움을 이루어, 장식 건축물으리 특점을 구현하였습니다. 

이 사묘는 각별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 1679년에 설립된 송찬ㅇ미사는 강의황제 주필의 비준하여, 오세달라이아왕락상가조 손수 지역을 선택한 사원입니다. 5세달라이가 주소를 선택할 때, 해당지역앞에 상모호가 있고, 뒤에는 카일산이 있으며, 동쪽은 맑은 나이하가 중전을 가로지나, 서쪽은 석카설보과 마주보고 있으며, “임목유유한 청천, 하늘이에서 내려온 김녹희”, 기타 지리위치는 천인합일이되어, 이 곳에 많은 승려들이 모일것이라 하여, 이곳에 사묘를 설립하기로 하였습니다. 

송찬임사는 정식으로 “갈단 송찬임사”로 불리워, 이 이름은 5세 달라이가 하사한 이름입니다. 첫번재 “갈단”은 송찬임사와 격노파 제1좌사원-- 갈단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1409년, 격노파 창시인 종객파 대사는 라싸에 “기원배법회”를 설립한후, 라싸 하남안 해발 3800미터 되는 왕파일산에 갈단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종객파는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격노파교법을 전하였습니다. 1419년, 종객파는 갈단사원급입니다. 갈단다는 이로 인해 격노파 저명한 6대 사원중에서 첫위치에 처하여, 청나나 융정황제는 사원에 “영태사”라는 이름을 명명하였습니다. “송찬임”은 천계삼신계임의 곳을 뜻하고 있습니다. 겨울에 마강건 “라취”(산신대)는 사라사를 상징하고 있으며, 서쪽 송임필”라취”는 드레펑 사원을 상징하여, 이는 라싸 삼대사원과 서로 호응하는 국면을 이루어, 송찬임사 건사 초기의 절박한 귀속심을 보아낼수 있습니다. 사실, 송찬임사와 라싸의 연관은 시종 건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샹그리라의 지방적 표지를 놓고 볼때 당시 서장지방정부는 관원을 파견하여   중전의 영도자들과 함께 건축공정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송찬임사 설립후, 라싸 삼대사는 고승려를 중전에 파견하여 사묘를 관리하게 하고, 격노파 교의 및 과목에 대하여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뭇산위에 설립되어 있는 송찬임사는 외형상에서 포탈라궁하고 유사합니다. 넓은 대전은 동시에 약 2000여명이 앉아서 경을 읽을수 있으며, 불법의 웅대함, 향화의 황성을 뜻하고 있으며, 선남신녀들이 끊임없없습니다. 주사에서 나와 산세를 따라 내려오면 산세를 따라, 빼곡이 늘어선 승려들의 숙사를 볼수 있습니다. 송찬임사는 설립이래, 운남성 지역에서 제일 중요한 장전불교지입니다. 7세 달라이 때부터 송찬임사는 승려는1300여명좌우로 증가되어, 건물을 확장하였고; 약 1750년 건륭황제의 지시에 따라, 송찬임사 승인의 인원수량을 1226명으로 정하여 -- 중앙정부에서는 장전불교에 대하여 매우 중요시하고 있었다는것을 보아낼수 있습니다. 1800년 좌우에, 송찬임사의 승려 인원수량이 2000여명에 달하였습니다. 이때 부터, 송찬임사는 운남성에서 규모가 제일큰 장전불교사원일 뿐만 아니라, 사천, 운남지역의 황교센터로 되어, 온 서장지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랜시간동안 송찬임사는 현지 사람들 마음속에서 높은 위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해설원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일반가정에 남자애가 있으며 사내 당라마에 보내는것이 영광이어, 부유한 가정에서는 매호마가 라마남자애들이 많습니다. 이들과 토사두 사람들은 한명만 남기어 생명을 이어가게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내로 보냅니다. 송찬임사내에는 역대의 진품들이 많고, 5세달라이,7세달라이시기의 팔존포금 석가모니 불상, 패엽경, 오채금즙정회당카, 황금 및 각종 정교한 도금 혹은 은질 향노, 만년등  등이 있습니다. 

 

전사에는 《감주얼》10부(이중 두부는 금즘친필),《단주얼》등200여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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