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가이드

고려공산 최후의 방주

오랜 전설속에, 대홍수의 재난을 피면하기 위해, 인류와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로 부터 방주는 우화가 되어, 우리들이 거주하고 있는 옛 행성은 다종다양한 재난에 임하게 되어, 한척의 방주가 뭇 사람들을 태우고 저편으로 향하였습니다. 과학가들은 사전에 한차례의 기나긴 빙하기에, 수많은 위기에 처하여 있는 물종들은 이들의 방주 - 고려공산을 찾아 살아남게되어, 천만년후에, 우리는 이들의 동종류가 이미 지구의 다른 곳에서 유실된것을 발견하여, 고려공산에서만 이런 물종들이 고독하게 생존하고 있습니다. 

고려공산과 노강을 조감

고려공산으로 향하기전에, “인류의 이면 서가-- 고려공산에 관한 해독”이라는 책을 보게되었는데, 작자는 범온입니다. 책중에 이렇게 해독 함: “길고 거대한 고려공산은 청장고원의 동남쪽의 백서랍령에서 발원하였습니다. 맑은 날씨때엔 토번의 설산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사실, 저는 여러차례 고려공산에 올라가 보았지만, 서장처럼 우뚝 솟아 있는 설봉을 본 적이 없이으며, 5128미터의 까야까보봉에 올라서면 어떨지는지요. 횡단산계중에서 제일 중요한 산맥으로서, 이의 의의는 높이 올라서 멀리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웅위로운 고려공산위에 올라서 동쪽으로 향하면 아세아와 유럽 대륙을 짓밟은거 같으며, 서쪽으로 한 발자국 내디디면, 인도대륙을 디디게 됩니다. 억만년전에 이 두 대륙은 이동을 거쳐 만나게 되어, 부딪힘과 결합으로 고려공산이 깊은 바다밑에서 우뚝솟아, 남북으로 관통되어, 세상에서 보기드문 산을 이루었습니다. 고려공산은 지구상 제일 장관적인 벽이고, 아세아주에서 제일 중요한 두 지역을 가르고 있습니다. 

고려공산 잠재공방

시선으로 남북으로 돌려, 청장고원에서 출발한 고려공산이 북에서 남으로 향하여, 중국과 인도 섬으로 급강하여, 길이는 약 600여 킬로미터이고, 길이는 약 600여 킬로미터이며, 기나긴 몸체는 5개 위도대를 경과하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비유 할 수 있음: 고려공산은 마치 청장고원과 중인반도을 연ㄴ결하는 거대한 교량과 흡사합니다. 이는 하나님만 “만들어 낼수”있는 교량입니다. 세계생태학가의 눈에,동부 히말라야산 지구는 세계적 물종이 제일 풍부한 10대 관건적인 지구중의 하나로서,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강 지역과 아름다움을 비할 수 있으며, 고려공산은 이의 동쪽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그 어느산도 고려공산처럼 풍부하고 우월한 자연조건을 구비하고 있지 않음:서쪽 기슭은 인도양 난온습기 기류 영향을 받아, 우수가 많고, 식피가 두꺼우며, 동쪽 기슭 노강하곡은 전형적인 건열하곡 기후입니다.기후의 다양성은 물종둘의 다양성을 결정하여, 동,식물이 만여종에 달합니다. 과학가들은 이를 “남북동식물주랑”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극열한 지질운동 발생기간에 고려공산은 동남서북 동식물의 “피난소”가 되어, 수많은 위급물종들은 고려공산에서 보존되어, 진귀한 동물의 피난소, 천연식물원과 물종인자창고로서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고려공산 국가급 자연보호구는 중국 수많은 자연보호구중에서 선두보호지구에 위치하여, 생물 다양성은 중국에서 중요한 지우이ㅔ 처하여 세계야생생물기금회로 부터 중요한 국제적 의의를 지닌 A급 보호구로 라열되었고, 유엔교육과학문화조직에서 “세계생물권보호고성원”으로 납입되었습니다. 

고려공산 숲바다

머나먼 영국의 죠지·포레스트가 처음으로 고려공산을 해독하였습니다. 1904년에  죠지·포레스트가 에러버든식물원의 위탁을 받고, 운남 고려공산을 찾아오게되었습니다. 이 신비한 큰산을 알기 위해, 그는 28년간 1932년에 이르기 까지 그는 고려공산의 들판에 영원히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이 28년간 그는 도합 7차례 대규모 식물을 채집하여, 고려공산에서 10만여종의 식물표본, 1만여종의 동물표본, 더욱이 조류, 3만여분의 각종 다양한 종자 표본을 채집하여 이를 유럽으로 운송하였다가 영국으로 운송하여 갔습니다. 당시  영국 황가지리학회의 회장은 문장을 발표하여 표양하였음: 죠지·포레스트 씨의 부지런은 작업으로 유럽의 가든이 빛을 뿌리게 되었습니다. 

진달래

고려공산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된것은 이곳의 세계 진달래의 왕으로 불리는 대형 진달래 때문입니다. 고려공산은 천연 진달래 가든으로 불리워 약 200여종의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1907년에 포레스트가 고려공산의 서쪽비탈에서 채집하고 있을때, 이 거대한 나무모야의 진달래를 발견하여, 그는 대수 진달래 원반표준을 채집하여 영국 에든버러식물원으로 보내여, 진달래에 관하여 권위를 지닌 전문가 검증후 이들은 문장을 발표하여 이런 진달래를 석진달래라 명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대수 진달래인것입니다. 대수진달래는 1907년에 발견되어, 발표 및 명명이후, 표본이 대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사람들의 영예로 여기고 성물로 여겨와, 이들은 마치 “절판의 유일본”을 지니고 있는듯이, 세계각지 식물학자들의 부러움을 자아내였던것입니다. 

대수진달래의 원판 표본이 박물관에서 전시된후, 20세기 80년대 전에 세계적으로 제일 큰 진달래나무 표본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영국사람들은 이로 인해 74년간 자호감을 지니었습니다. 포리스트이후, 이 대형의 진달래는 어디에서 생장하고 유실되었는지. 비록 중국에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전문가들도 이들이 어디에서 생장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1981년에 이르러,중국 인재들은 다시 고려공산에서 대수진달래를 발견하게 되었던것입니다. 당시, 포레스트가 발견한 그 대수 진달내는 나무 직경이 87센티미터이며; 오늘날 고려공산에 신선한 꽃들이 만발한 대수 진달애 최대 직경은 305센티미터입니다. 

고려공산은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진달래왕을 배육하였을 뿐만 아니라, 운남산다의 원생지로서, 그 어떤 인공재배 다화는 이 곳에서 서로 대응하는 원시 품종을 찾을 수 있습니다.이 곳에서 생장한 천년 참으루 킹, 은행 킹이 우뚝솟아, 기개가 드넓습니다. 고려공산에 들어서면,  마치 산과 물이 거대한 화폭속에 들어선듯, 여러분들을 맞이하고 있는것은 신비한 원시삼림, 기이한 날짐승들이 날아예고, 빈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이 흘러내리는 비폭, 열기가 자욱한 고산온천 그리고 “한산의 사계절, 십리 부동한 날씨”의 입체감의 기후와 사계절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짙푸름이 덮혀있는 유유한 옛거리에서 바람과 눈이 씻어가는 단갈잔비는 항일전쟁으로 남겨진 토치카가되어, 여러분들은 고려공산의 온갖풍차를 거친 신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운남 들창코원숭이

곰보버섯

고려공산의 매력은 언어로 묘사할 수 없으며, 이는 중국 서부에서 제일 위대한 산맥이으로서, 이의 위대함은 제왕의 봉사여서가 아니고, 문화인들이 규모가 방대한 저작으로 찬미한적도 없습니다. 이가 소유하고 있는것은 대지, 자연, 생명에서 내원된것입니다. 

복공아평폭포

(재인용: 운남화보

작가: 문 / 이우임  도면 /노강주여행발전위원회 보산시여행발전위원회)

테마공략